'전체'에 해당되는 글 70건

  1. 근황 2008/09/01
  2. 모순과 아이러니 위에 쓰여진 시-<24시티> (1) 2008/08/28
  3. 모든 존재의 정원 (1) 2008/05/18
  4. 사람으로 죽는다는 것 2008/05/08
  5. 2008.5.8 2008/05/08
  6. 미스터 스쿠프, 윤석봉 (1) 2008/05/07
  7. 당신은, 2008/04/28
  8. 애정하는 것 2008/04/27
  9. 응응 (1) 2008/04/27
  10. 에헴 (1) 2008/04/27

근황

from 분류없음 2008/09/01 17: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름 끝자락 어디쯤에 가을이 엉덩이를 들이민 것 같기도 하고...
가을 초엽 어딘가에 여름이 아직 미적미적 맴을 도는 것 같기도 한 8월의 어느 날.
열대우림 라이온 스밸리 3층 내가 애정하는 낮은 담장 위에서.
향과 아이스크림으로 운우지락을 나누던 중...
향이 찍어준 어여쁜 사진들.
아...마지막 외계스러운 사진은 다른 날 찍은 거지만. 찍사는 역시 향.
요즘 이 여인이 아주 쏘 스윗하고 핫하시다.
난 20대에 참...똥오줌 못가리는 그냥 철없는 것이었는데...
이 젊음은 어찌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imag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작에 앞서 사전 정보를 조금 찾아보니,
<청두를 지도에서 살펴보면 상하이나 광저우 방향으로는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분지 형태의 고립된 물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러한 청두는 1999년부터 동서간 균형 발전과 내수 진작 및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무원 총리 직속으로 '서부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라고 인터넷에 뜨더라.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참고하시라.
================================================

<(成都 청두) 너는 점점 사라지지만...
   나에게 찬란한 삶을 주었단다.>
                                               -영화의 마지막.

사람이 공간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애정어린 경의와 감사의 말이 있다면 바로 저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2008년 여름의 막바지...중국, 그 거대한 땅덩어리가 온갖 것들로 뒤섞여 들끓는 동안-
서울 압구정의 한 영화관에서 지아장커의 <24시티>는 그야말로 조용히,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 채 한 권을 다 채우지 못한 듯한-그러나 어디에도 낙장은 없는 작은 시집처럼,
영화 <24시티>는 중국을, 청두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꺼내어 놓았다.
그리고...영화는 사물과 노동, 사람과 장소, 삶과 시간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세상에 노동자 아닌 사람이 없는 까닭에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건 노동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노동이 삶에 어떤식으로 진입하여 개인 삶의 속성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노동 자체를 대하는 사람들의 내면화된 의식과 욕망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 그렇지만 그걸 다 쓰자면 당장 내일 출근이 위태로울뿐더러...솔직히 아직 깊이 생각은 안해본 관계로 접는다ㄱ-)

중국 서남부 쓰촨성 청두에 세워진 <팩토리 420>은 군수물자를 제작하는 커다란 국영공장.
영화는 이 공간이 50여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재 전유되어 가는지를, 그곳에서 일했던 다섯 명의 노동자와 연기자 셋(?넷?)의 입을 빌어 얘기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그저 기록을 위해 고정된 것처럼 최소한의 역할만을 보여주는 가운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섬세하게 아우르는 지아장커의 실험이 시작된다.

먼저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팩토리 420> 부지에 내걸린 슬로건의 변화는-국가와 안보를 위한 내용에서 개인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국가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그들 삶의 헤게모니가 이행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 구성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들의 인터뷰라는 측면에서 보면

첫째, 영화 초반 텅 빈 <팩토리 420>에 앉아 시작되는 노동자의 인터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과정'이 응축되어 있다. 사물에 깃든 가치를 기억하라"
둘째, 청도에 이주해 수십년 째 살고 있는 중년 여인의 인터뷰
-"자본에는 눈이 없다.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이다"
셋째, 청도 이주 과정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뒤 고독한 황혼기를 맞이한 여인(배우)의 인터뷰
-"개인은 국가의 얼굴을 기억하지만, 국가는 개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넷째, 상하이를 떠나 <팩토리 420>에 근무하게 된 '소화'라는 별명의 여인(배우)의 인터뷰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이지만, 삶의 모든 것이 노동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노동자에게도 사랑이, 노래가, 개인의 역사가 존재한다"
다섯째, 물질 노동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술학교에 입학했으나, 공장 노동자가 되길 거부하고 뉴스캐스터가 된 지오강
-"의식이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위치가 의식을 변화시킨다."
여섯째, 노동자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이피족화 된 삶을 살고 있는 독신 여성(배우)
-"성장은 모순을 낳지만, 모순과 아이러니 속에서도 삶은 피어나며, 생활은 이념에 우선한다"

이밖에도 몇 개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이미지는 대략 남아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충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텍스트라고 하는 것은 맥락에 따라 읽히지 않으면 그 한계가 분명한 표현 방식이라, 내가 이렇게 정리를 했다 해도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해석이 존재한다는 걸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장면 사이 사이에 들어간 음악 역시 눈여겨 봄직하다.
난 지아장커의 다른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를 보고 생각보다 음악을 꽤 적절히 쓰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자신이 속한 세대를 포함해, 그 자신이 경유해 온 영토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는 식으로 풀어낸 탓인지...형식상으로는 감독의 개입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오래된 질그릇을 닦는 어르신들 특유의 해묵은 애정이 느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인용한-이를테면 홍루몽이나 첩혈쌍웅의 주제가 같은-중국 고전들만 봐도 그 애정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고 보니 깜박할 뻔 했는데, 서두에 인용한 싯귀(맞나?)가 나오고 화면이 암전하던 그 순간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두보가 자연스레 떠오르더라.
그래서 어제 인터넷을 좀 뒤졌더니 청두에 두보초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생각해 보니 두보선생이 말년에 즈음해서 잠시 청두(成都)에 살았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랬나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 쓴 시들의 분위기가 얼추 이 영화와 맞물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므로 장담은 못하겠다. (후후...그래도 하찮은 기억력치고는 꽤 쓸만하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흡족한 마음을 아주 감출 수는 없구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난 두보가 대단한 시성이라 특별히 기억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을 하면 분명 양동이째로 돌 던질 사람들이 줄줄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교과서 아닌 곳에서 이 양반이 쓴 시와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처음 접하고(무슨 두보 전기 같은 걸 읽었던 듯) 했던 생각은....
'이 아저씨...좀 찌질하네...'였다. 난 방금 정녕 용서받지 못할 말을 내뱉았는지도;;ㄱ-;
변명을 좀 하자면...이 아저씨 사는 게 참 기구해 보였고...태생적으로 순박하고 여리기 짝이 없는 사람이 험한 시대를 만나 세상 험한 꼴을 보면서 떄로는 무너지고, 방황하고, 연연하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 좀 그리 보였지 싶다.
아...사족이 너무 길었다.

여튼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사실 영화라는 게 찍고 싶다고 다 찎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찍는다고 다 보아주는 것도 아닌 까닭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쨌든 나름 지식인이고, 부유한 축에 속하는 인텔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이나 제도보다 질긴 것이 민족인 것 같더라는 어떤 사람 말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근원적으로 자신을 낳은 태(胎)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애정하는 모습은...어쨌든 무관심한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한켠으로 조용한 지지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말인즉슨, 뭐 대단할 것은 없지만 나라는 보통사람도 기회가 된다면 지아장커라는 사람의 다음 영화를 한번 볼 마음이 들었다는 얘기?




image(0) image (0)

제목부터 가사와 멜로디 보컬의 음색.
처음 듣게 된 그 날의 시간과 환경, 그 모든 타이밍이 만들어 낸 기적.

Here you are
그대가 있네

Daylight's star
한낮의 별

Made out of miracles
기적으로부터 탄생한

Perfection
그대 밖에 없네

Of your own
완벽한 미

You alone
그대만이 갖고 있네

O so incredible
이 얼마나 대단한가

Each atom
각각의 원자가

Sings to me
나에게 노래하네

"Set me free
"육체의 연쇄에서

From chains of the physical."
자유롭게 해 주오."

O free me, O free me
자유로이,자유로이

The mirror melts
거울이 녹네

I'm somewhere else
나는 어딘가

Inside eternity
영원의 내부로

Where you on Outstretched wings
날개를 펼친

Sing within The Garden of Everything
그대가 「모든 존재의 정원」에서 노래하네

Where memories
기억이

Call to me
나를 부르네

Backward dreams?
역주하는 꿈 속인가?

Or phantom reality?
아니면 현실의 환영인가?

Call to me, call to me
부르고 있네,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네

And so here we are
그리고 우리들이 있네

Lovers of Lost Dimensions (歌おう 今風に乘って 遙か遠い)
차원을 상실한 연인들 (노래하리 지금 바람을 타고서 아득한 저편)

Burning supernovas of all sound and sight (あなたのもとへ)
모든 소리나 시계가 소진해버린 초신성 (당신 곁으로)

Every touch, a temptation (いつか空は ひとつにつながり)
모든 접촉은,유혹 (언젠가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And for every sense, a sensation (渡って行ける あなたのもとへ)
온갖 감각이,난무하네 (건너 갈 수 있으리 당신 곁으로)

Eyes of pure
순수한 눈동자

Deep azure
심오한 푸르름

Quite unbelievable
믿을 수 없을 정도로

The sun's daughter
태양의 딸로서

You've been made
그대는 태어났네

Not to fade
빛이 바래지 않으리

Quite inconceivable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Each atom
각각의 원자가

sings to me
나에게 노래하네

"Set me free
"육체의 연쇄에서

From chains of the physical."
자유롭게 해주오."

O free me, O free me
자유로이,자유로이

A love like ours
사랑은 우리들처럼

A starry flower
별과도 흡사한 빛나는 꽃

Through seasons and centuries
계절과 세기를 초월하여

As rivers reach the sea
강물이 바다로 흘러 가듯이

You'll reach me
그대도 나를 찾아내었네

With songs of your symmetry
그대의 조화의 노래와 함께

A small boat
조그마한 배가

There will float
띄워지리

To far off coasts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The Isle of Infinity
무한의 섬으로

Come with me, O come with me
함께 가주오, 나와 함께 가주오

Here we'll see
우리들이 보게 될 것은

Love's lost tree
잃어버린 사랑의 나무

Made out of miracles
기적으로부터 탄생한

Emotions, crystal leaves
감정,수정으로 된 잎사귀

To cover me
나를 덮고 있는

And you in eternity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그대

Each atom sings to us
각각의 원자가 노래하네

Through the blood
혈액을 통하여

"Love is a miracle"
"사랑은 기적이라오"

Sings softly, it sings softly
부드럽게 노래해 주오, 원자가 부드럽게 노래하네

And so here we are
그리고 우리들이 있네

Lovers of Lost Dimensions (歌おう 今風に乘って 遙か遠い)
차원을 상실한 연인들 (노래하리 지금 바람을 타고서 아득한 저편)

Burning supernovas of all sound and sight (あなたのもとへ)
모든 소리나 시계가 소진해버린 초신성 (당신 곁으로)

Every touch, a temptation (いつか空は ひとつにつながり)
모든 접촉은,유혹 (언젠가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And for every sense, a sensation (渡って行ける あなたのもとへ)
온갖 감각이,난무하네 (건너 갈 수 있으리 당신 곁으로)

And so here we are
그리고 우리들이 있네

Twin stars of brilliant brightness (歌おう 今風に乘って 遙か遠い)
밝게 빛나는 쌍둥이 별 (노래하리 지금 바람을 타고서 아득한 저편)

Lanterns lit by life for all the depths of night (あなたのもとへ)
모든 밤이 깊어지기 위해 생명이 켜는 랜턴 (당신 곁으로)

And every day will return us (いつか空は ひとつにつながり)
그러기에 하루하루가 우리들에게로 돌아오리 (언젠가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To arms of the ever eternal (渡って行ける あなたのもとへ)
영원의 품 속으로 (건너 갈 수 있으리 당신 곁으로)

And so here we are
그리고 우리들이 있네

So far from earthly orbits (歌おう 今風に乘って 遙か遠い)
지상의 궤도에서 멀리 떨어져 (노래하리 지금 바람을 타고서 아득한 저편)

Burning supernovas of all sound and sight (あなたのもとへ)
모든 소리와 시계가 소진해버린 초신성에는 (당신 곁으로)

Where every day will return us (いつか空は ひとつにつながり)
하루하루가 우리들에게로 (언젠가 하늘은 하나로 이어져)

To arms of the ever eternal (渡って行ける あなたのもとへ)
영원의 품 속으로 돌아오리 (건너 갈 수 있으리 당신 곁으로)

image

My lost boy


Christine Lord, the mother of Andrew, who died of variant CJd, reveals how her son fought the illness with courage and dignity in this personal and moving account of his death and its impact on her family.

인간 광우병 (vCJD)으로 죽은 앤드류의 어머니 크리스틴 로드는  아들의 죽음과  죽음이 그녀의 가족에게 가져온 충격에 대하여 직접 감동적인 글에서 어떻게 그녀의 아들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위를 지키며 용기있게 병마와 싸웠는지 보여준다.  

A mother's story...

I was asked to write some words about Andrew and words are my profession. They usually fall seamlessly from my fingers to the keyboard.
앤드류에 대하여 무언가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글쓰는 것은 나의 직업이다. 대개 글을 쓰게 되면  내 손가락에서 단어들이 키보드로 끊임없이 솟아나온다.
But how does a mum write about her on-ly son who has died at just 24-years-of-age of vCJd?
그러나 하나뿐인 스물 네살된 아들을 인간광우병으로 잃은 엄마가 무엇을 어떻게 쓸수 있을까? 
From the age of four Andrew told me he wanted to work in television and radio, and he never wavered from that career path.
4살때부터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던 앤드류는 자신의 꿈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었다.
At 14 he started spending every school holiday and weekend at Talk Radio in London.
14살때 앤드류는 방학과 주말마다 런던의 토크 라디오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He even sneaked up to work at the studios in Oxford Street when he should have been at school.
학교에 가야할 시간까지 옥스포드 스트리트에 있는 스튜디오에 일하러 몰래 다니기도 했었다.

Andrew, who had been shy and determined as a small boy, had blossomed into a teenager who was holding his own in the fast paced environment of a radio newsroom.
수줍지만 단호한 성격의 소년이었던 앤드류는 빠르게 움직이는 라디오 뉴스룸의 환경에 적응 하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으로 자라났다.
 He was offered work alongside some of the best professionals in the business
그는 방송계의 몇몇 최고의 프로들과 함께 일하는 자리를 얻게 되었다.

Fresh-faced talent

Fresh-faced and young, he was refused entrance to the Café de Paris during an outside broadcast.
새로 들어온 젊은 앤드류는 외부취재를 위해 카페 파리스 클럽에 들어가려다 (미성년자처럼 보여) 입장이 거부되기도 했었다.
It was on-ly when the founder of talkSPORT, Kelvin Mackenzie, intervened that Andrew was allowed to enter the club.
talkSPORT 창립자인 켈빈 맥켄지가 나서 겨우 클럽에 들어갈 있었다.
That night Andrew wore his first suit, which never quite fitted and always looked too big.
그날 앤드류는 그에게는 항상 너무 커보였던 그의 첫번째 양복을 입었다.
This is on-e of a thousand happy and joyful memories I have of Andrew. His light shone so brightly, if on-ly for a while.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앤드류에 관한 수없이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 하나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의 재능은 정말 밝게 빛났다.
Producing shows for a long list of celebrities and making countless friends, Andrew's life was increasingly busy and fun.
많은 연예인들에 관한 쇼를 만들고 셀수 없이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가며 앤드류의 삶은 점점 즐겁고 바빠졌다.
He worked in Manchester, London and Birmingham, and there was always a new project, programme or show.그는 맨체스터와 런던, 버밍햄에서 일했고 항상 새로운 계획과 프로그램, 쇼가 함께 했다.
He began to branch out into television, working on quiz shows like Test the Nation, as well as working for CBBC, ITV and Sky.
앤드류는 텔리비젼까지 진출하게 되어 CBBC ITV, Sky에서 일했을뿐 아니라 "테스트 네이션" 같은 퀴즈쇼에서도 일하게 되었다.  
His capacity for work was huge and, because he loved his chosen career so much, it was never a chore.
그는 그가 선택한 직업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한번도 힘들어하거나 지겨워 하지 않았고 그의 일에 대한 능력은 대단했다.

Successful career lay ahead

Andrew was handsome, violet-eyed, designer-dressed and, like many young men, very fussy about his hair and appearance.
잘생긴 얼굴에 보랏빛 눈동자, 옷도 멋지게 입었던 앤드류는 다른 많은 젊은 남자애들처럼 머리 모양과 외모에 매우 신경쓰곤 했다.
By the aged of 20, he had already worked in the media for six years and this experience and professional maturity had already earned him the title "legend of the desk".
스무살 무렵, 그는 이미 6년동안이나 방송언론계에서 일했고 그의 이런 많은 경험은 그에게 "편집부의 전설"이라는 별명을 가져다 주었다.
On his 21st birthday Andrew said to me: "When I am head of the BBC I'll buy you a sports car mum".
그의 스물 한살 생일날 앤드류는 내게 말했다. " 엄마, 내가 BBC 사장이 되면 엄마에게 스포츠카를 사줄께."
Although I laughed, I believed my son had a very successful career and life ahead of him.
비록 당시에는 웃어 넘겼지만, 나는 아들이 앞으로 성공적인 직업과 삶을 가지리라 믿었었다.
So when Andrew started to work less, spend more time alone in his room and withdraw from family life, I was concerned.
그래서, 언젠가부터 앤드류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을때 나는 걱정스러웠다.
The headaches, monosyllabic conversations and dramatic weight loss led to many trips to the GP, who diagnosed depression.
두통, 한마디의 짧고 퉁명스러운 대화 그리고 엄청난 체중 감소로 병원을 향하게 되었고, 의사는 우울증이라고 진단했다.

Withdrawn and sad...

By March 2007 Andrew could no longer work and he couldn't deal with correspondence or phone calls.
2007 3월경이 되자 앤드류는 이상 일할수 없게 되었고 전화등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수 없게 되었다. Everything just seemed too much for him.
모든 것이 그에게는 너무 힘겨워 보였다.
Andrew was not on-ly withdrawing from me, he seemed to be distancing himself from the world.
엄마인 나만 멀리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든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The deadly disease that had been incubating in his body for many years was developing.
오랫동안 그의 몸속에서 배양되고 있던 죽음의 병이 자라나고 있었다.
Andrew was not depressed… he was dying.
앤드류는 우울증이 아니었다...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The year 2007 is a blur of hospitals, tests and invasive procedures.
2007 한해는 병원과 검사 그리고 외과적 처치들로 얼룩져있다.
Lumbar punctures, tonsil biopsy, brain scans, blood tests.
요추천자, 편도 생검, 뇌스캔, 피검사.
The weeks of uncertainty were followed by the dreadful diagnosis.
몇주 동안의 결과를 알수 없는 불안감은 결국 끔직한 검사 결과로 마무리지어졌다.
Then there were the long months of holding his hand through the days and nights of terror, which is the reality of dying from vCJD.
때부터 기나긴 동안 앤드류의 손을 잡고 인간광우병으로 죽게 된다는 현실에 대한 공포의 밤과 낮을 보내게 되었다.

 

I put on my most reassuring smile until it became fixed, although it hid a deep sadness.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뒤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있었다.

Breaking my heart

Andrew's debilitating symptoms grew hour by hour, each ticking of the clock producing another disablement, another torture, pain or fear.
앤드류의 증상은 시계 바늘이 움직일때마다 새로운 마비 증상과 고통, 아픔, 공포를 자아내여 매시간 악화되었다. When he had to use a plastic drinking beaker for the first time, as he couldn't co-ordinate his hands, Andrew told me: "Mum I will on-ly use this in the house and until I'm better".
손을 움직일수 없게 되어 처음으로 플라스틱 음료 비이커를 사용해야만 하게 되었을때 앤드류는 내게 말했다 : "엄마, 이거 나을때까지 집에서만 사용할래요."
I smiled and agreed, but inside my heart was breaking.
나는 미소를 보이며 그러라고 했지만, 가슴 속은 찢어지고 있었다.
Andrew was as determined as ever.
앤드류는 언제나처럼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He would say: "I must be able to walk", until he couldn't take a single step.
걸음도 없게 될때까지 앤드류는 말하곤 했다 : "나는 걸을 있어."
Then he would say: "I must be able to go out to do simple things like watching and hearing the sea", until he was unable to go outside.
그후  밖에 전혀 나갈 없게 될때까지 그는 말했다 : "밖에 나가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다를 바라보는 일정도는 분명히 있게 될거야." 
And finally: "I must be able to talk", until he could no longer put a word together, or even move the muscles in his face.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어 마디 말할 없게 될때까지, 아니 얼굴의 근육조차 움직일 없게 될때까지 : " 있어."

Upbeat and unafraid...

I filled our home with his friends, music, activity and noise, pretending to be upbeat and unafraid.
즐거운척 두려워 보이지 않기 위해 앤드류의 친구들을 집에 부르고, 음악과 놀이, 왁자지껄한 풍경으로 집안을 채웠다.
Andrew looked to me for reassurance to allay his fears. He trusted me and I hope I didn't let him down.
앤드류는 내가 그의 공포를 가라앉혀주기를  바랬다. 그는 나를 믿었고 나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When he woke in the morning, I was the first person he saw. And I was the last person he looked at before he closed his eyes at night.
앤드류가 아침에 깨면 제일 먼저 나를 있었고, 밤에 눈을 감기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나였다.
While Andrew slept, I would sit in a chair next to him reading research, scientific data and the many volumes of the BSE inquiry, looking for answers to my many questions.

앤드류가 자는 동안 나는 옆의 의자에 앉아 광우병에 대한 나의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리서치 자료들과 과학 자료들, 그리고 많은 양의 광우병 연구서들을 읽었다.

 

This resulted in the Inside Out programme and my campaign for justice for Andrew.

"인사이드 아웃" 프로그램과 앤드류를 위한 정의 캠페인이 바로 결과물이다.

 

My fury at watching my gentle son die so terribly has increased my tenacity and it drives me forward through the most difficult time of my life.

착한 아들이 공포스럽게 죽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던 나의 분노는 나를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고  내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Distressing fight for life

Andrew had a terrible, noisy and distressing death.

앤드류는 끔찍하고 소란스럽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For four days and nights, I held my son as he fought to stay alive.

4 낮과 밤동안 아들이 살기위해 싸울때 나는 그를 안고 있었다.

 

Although Andrew's brain had been systematically destroyed by vCJD, his 24-year-old body refused to give up.

비록 앤드류의 뇌는 인간광우병에 의해 조직적으로 망가졌지만, 그의 24년된 육체는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His heart was strong.

그의 심장은 강했다.

 

I held him as his body continually shook the iron bed that had become his home.

앤드류가 온몸으로 그의 집이 되어버린 철제 침대를 뒤흔드는 동안 나는 그를 안고 있었다.

 

Despite the morphine, his rattling breaths filled my bedroom. Those last images of my Andrew are burned on my soul and broken heart.

모르핀 주사도 소용없이 거르렁거리며 거칠게 내뱉던 그의 숨소리가 침실을 채워버렸다. 나의 앤드류의 마직막 모습들이 나의 영혼과 심장에 불타고 있다.

 

I believe that many people are responsible for my son's avoidable death and that none of them have been held accountable.

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들의 피할수 있었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믿지만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Please join me in my campaign for justice for Andy.

앤디를 위한 나의 정의 켐페인에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last updated: 03/05/2008 at 11:19

image

2008.5.8

from 그날그날 2008/05/08 14:59

부서진 배를 어떻게든 고쳐보려 했지만..
바람과 오랜 항해로 나무 하나 하나에까지 스며버린 습기로 헐어버린 배는....
어느날 갑자기 바다에서 작은 불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겪은 풍랑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 작고 미미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 작은 불씨는, 그 어떤 바람과 폭우보다도 확실하게,

그 배를 부숴버렸답니다....




누군가한테...묻고 싶은 게 있는데..
정말 이럴 때 그 아이에게 물어서는 안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불을 삼킨 사람처럼, 나는,
대답이 듣고싶어..

image
항쟁에서 빛난 ‘미스터 스쿠프’
viewToday('auto');

한겨레 | 기사입력 2008.03.16 14:01 | 최종수정 2008.03.16 14:01

[한겨레] "당신의 사진이 맘에 들지 않았다면, 당신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남긴 이 말은 피사체를 향한 집중과 몰입이 사진가의 덕목임을 말해준다. 한국 사진계에서 윤석봉(67)의 사진이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현장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진가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아투위 해직이 전화위복으로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한평생을 사진기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1967년 < 동아일보 > 사진기자로 출발해 75년 동아투위 사건으로 해직됐고, 86년 < 로이터 > 한국 특파원으로 복귀해 200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30년 이상 카메라를 놓지 않고 현장에서 지냈다. 강한 현장성은 기교가 적으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인물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에 몰입했고,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려운 장면을 포착했다.

윤석봉은 "동아투위 사건을 겪지 않고 한국 신문사에 남았다면 사진부 데스크로서 현장에서 멀어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다. 흔히 국내 언론사에서 사진기자 15년 안팎을 하면 사진 에디터 기능을 하는 데스크를 맡는다. 하지만 < 로이터 > 에서 사진 인생을 바친 그는 예순이 넘어서까지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진엔 한국 현대사 거개가 담겼다. 69년 홀몸으로 뛰어들어 취재한 흑산도 무장간첩 사건부터 87년 6월 항쟁, 97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 2004년 고속철도(KTX) 개통까지 없는 게 없다. 또한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다섯 대통령을 기록했다. 그리고 취재하고 돌아올 때마다 '물건'을 가져오는 그를 < 로이터 > 는 '미스터 스쿠프'(scoop·특종)라고 불렀다. < 로이터 > 는 수차례 그의 특종기를 전 세계 사진기자들에게 팩스로 돌렸다. 윤석봉이 연달아 특종 사진을 건진 이유는 로버트 카파가 그랬던 것처럼 피사체에 몰입하고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장에 포진함으로써 그는 스쿠프를 건질 수 있었다.

그의 스쿠프는 87년 6월 항쟁에서 빛난다. 경찰의 방패에 가격당하는 학생, 최루탄 발사기를 빼앗아 부수는 마스크 쓴 시민, 화염병을 던지는 청년의 분노 어린 표정 등 그는 시위대와 전경 속에 섞여 뛰어다녔다.

"사진을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위험한 순간에 시위대 한복판에 서 있다."

셀 수 없는 화염병이 그의 발밑에서 불탔고, 경찰에게도 부지기수로 맞았다. 지금도 그의 종아리는 화상의 흉터로 어지럽다.

"연세대 앞 철길 둑에 올라 시위 전경을 찍었다. 학생들이 기자들에게 돌을 던졌다. 군부독재에 제 소리를 못 내던 언론에 대한 항의였다. 나는 돌세례를 받으며 시위대 앞으로 내려갔고 당신들의 말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설명했다."

잊을 수 없는 이한열과 그 가족

그 뒤, 학생들은 화염병을 들고 뛰던 시위대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앉아 있던 윤석봉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군부독재에 재갈 물린 한국 언론과 달리 외국 통신사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윤석봉에게는 아침부터 방독면과 헬멧을 쓰고 나가 한밤에 돌아오는 고된 나날이 계속됐다. 몸무게가 8㎏ 줄었다. 하지만 항쟁을 기록한 사진은 매일 세계로 타전됐다.

윤석봉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87년 6월9일 최루탄에 스러진 이한열 열사와 가족들을 담은 스쿠프를 꼽는다. 한 달 동안의 투병 끝에 숨진 이한열 열사는 수의를 입고 누워 눈을 감았다. 6·29 선언을 앞세워 군사독재는 항복했고, 가족들은 승리를 보지 못하고 떠난 이한열 열사를 고개 숙여 바라보고 있다. 숨진 이한열 열사가 전경으로, 가족들이 후경으로 배치됐다. 사진가와 피사체의 거리는 제로에 가깝다. 가족들이 윤석봉에게만 허락한 '단독'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윤석봉의 사진 인생을 결산한 사진집 < 미스터 스쿠프 > (눈빛 펴냄)를 보면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지나간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 단 하나가 빠졌다.

"광주항쟁을 빠뜨린 게 아쉽다. 난 당시 해직기자였기 때문에 광주에 내려가지 못했다. 사진기자로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광주시민들에게 미안했다. < 로이터 > 사진기자로 복귀한 뒤, 매년 5월 광주를 찾았다."

기교 없이 담백한 그의 사진은 메시지가 분명하다. 사진가는 피사체 가장 가까이에 존재했으며, 짧은 거리성은 세밀화를 그려냈다. 단순한 기록매체임에도 사진이 정치적인 매체로 전화하는 이유다. 현장은 메시지를 창조한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작품사진 윤석봉 제공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mage(0) image (0)

당신은,

2008/04/28 20:0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엠프없이 컴퓨터에 연결해 쓸 수 있는 일렉기타.
언젠가는 너와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image(0) image (0)

응응

2008/04/27 21:27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에헴

2008/04/27 21:18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