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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순과 아이러니 위에 쓰여진 시-<24시티> (1) 2008/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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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 앞서 사전 정보를 조금 찾아보니,
<청두를 지도에서 살펴보면 상하이나 광저우 방향으로는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분지 형태의 고립된 물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러한 청두는 1999년부터 동서간 균형 발전과 내수 진작 및 소수민족 거주지역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무원 총리 직속으로 '서부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라고 인터넷에 뜨더라.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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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都 청두) 너는 점점 사라지지만...
   나에게 찬란한 삶을 주었단다.>
                                               -영화의 마지막.

사람이 공간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애정어린 경의와 감사의 말이 있다면 바로 저 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2008년 여름의 막바지...중국, 그 거대한 땅덩어리가 온갖 것들로 뒤섞여 들끓는 동안-
서울 압구정의 한 영화관에서 지아장커의 <24시티>는 그야말로 조용히,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 채 한 권을 다 채우지 못한 듯한-그러나 어디에도 낙장은 없는 작은 시집처럼,
영화 <24시티>는 중국을, 청두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꺼내어 놓았다.
그리고...영화는 사물과 노동, 사람과 장소, 삶과 시간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세상에 노동자 아닌 사람이 없는 까닭에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건 노동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노동이 삶에 어떤식으로 진입하여 개인 삶의 속성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노동 자체를 대하는 사람들의 내면화된 의식과 욕망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 그렇지만 그걸 다 쓰자면 당장 내일 출근이 위태로울뿐더러...솔직히 아직 깊이 생각은 안해본 관계로 접는다ㄱ-)

중국 서남부 쓰촨성 청두에 세워진 <팩토리 420>은 군수물자를 제작하는 커다란 국영공장.
영화는 이 공간이 50여년 남짓한 시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재 전유되어 가는지를, 그곳에서 일했던 다섯 명의 노동자와 연기자 셋(?넷?)의 입을 빌어 얘기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그저 기록을 위해 고정된 것처럼 최소한의 역할만을 보여주는 가운데,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문학과 영화의 경계를 섬세하게 아우르는 지아장커의 실험이 시작된다.

먼저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팩토리 420> 부지에 내걸린 슬로건의 변화는-국가와 안보를 위한 내용에서 개인의 안전과 생명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국가중심에서 개인중심으로, 그들 삶의 헤게모니가 이행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야기 구성의 주축을 이루는 인물들의 인터뷰라는 측면에서 보면

첫째, 영화 초반 텅 빈 <팩토리 420>에 앉아 시작되는 노동자의 인터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과정'이 응축되어 있다. 사물에 깃든 가치를 기억하라"
둘째, 청도에 이주해 수십년 째 살고 있는 중년 여인의 인터뷰
-"자본에는 눈이 없다.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이다"
셋째, 청도 이주 과정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뒤 고독한 황혼기를 맞이한 여인(배우)의 인터뷰
-"개인은 국가의 얼굴을 기억하지만, 국가는 개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넷째, 상하이를 떠나 <팩토리 420>에 근무하게 된 '소화'라는 별명의 여인(배우)의 인터뷰
-"노동은 삶의 기본 조건이지만, 삶의 모든 것이 노동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노동자에게도 사랑이, 노래가, 개인의 역사가 존재한다"
다섯째, 물질 노동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술학교에 입학했으나, 공장 노동자가 되길 거부하고 뉴스캐스터가 된 지오강
-"의식이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위치가 의식을 변화시킨다."
여섯째, 노동자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이피족화 된 삶을 살고 있는 독신 여성(배우)
-"성장은 모순을 낳지만, 모순과 아이러니 속에서도 삶은 피어나며, 생활은 이념에 우선한다"

이밖에도 몇 개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이미지는 대략 남아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충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대략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텍스트라고 하는 것은 맥락에 따라 읽히지 않으면 그 한계가 분명한 표현 방식이라, 내가 이렇게 정리를 했다 해도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해석이 존재한다는 걸 다들 아시리라 믿는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장면 사이 사이에 들어간 음악 역시 눈여겨 봄직하다.
난 지아장커의 다른 영화를 한 편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를 보고 생각보다 음악을 꽤 적절히 쓰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 자신이 속한 세대를 포함해, 그 자신이 경유해 온 영토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는 식으로 풀어낸 탓인지...형식상으로는 감독의 개입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오래된 질그릇을 닦는 어르신들 특유의 해묵은 애정이 느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사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인용한-이를테면 홍루몽이나 첩혈쌍웅의 주제가 같은-중국 고전들만 봐도 그 애정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고 보니 깜박할 뻔 했는데, 서두에 인용한 싯귀(맞나?)가 나오고 화면이 암전하던 그 순간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두보가 자연스레 떠오르더라.
그래서 어제 인터넷을 좀 뒤졌더니 청두에 두보초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생각해 보니 두보선생이 말년에 즈음해서 잠시 청두(成都)에 살았던 게 기억에 남아서 그랬나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 쓴 시들의 분위기가 얼추 이 영화와 맞물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물론 기억이 틀릴 수도 있으므로 장담은 못하겠다. (후후...그래도 하찮은 기억력치고는 꽤 쓸만하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흡족한 마음을 아주 감출 수는 없구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난 두보가 대단한 시성이라 특별히 기억하는 건 아니다.
이 말을 하면 분명 양동이째로 돌 던질 사람들이 줄줄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내가 교과서 아닌 곳에서 이 양반이 쓴 시와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처음 접하고(무슨 두보 전기 같은 걸 읽었던 듯) 했던 생각은....
'이 아저씨...좀 찌질하네...'였다. 난 방금 정녕 용서받지 못할 말을 내뱉았는지도;;ㄱ-;
변명을 좀 하자면...이 아저씨 사는 게 참 기구해 보였고...태생적으로 순박하고 여리기 짝이 없는 사람이 험한 시대를 만나 세상 험한 꼴을 보면서 떄로는 무너지고, 방황하고, 연연하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 좀 그리 보였지 싶다.
아...사족이 너무 길었다.

여튼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사실 영화라는 게 찍고 싶다고 다 찎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찍는다고 다 보아주는 것도 아닌 까닭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쨌든 나름 지식인이고, 부유한 축에 속하는 인텔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이나 제도보다 질긴 것이 민족인 것 같더라는 어떤 사람 말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근원적으로 자신을 낳은 태(胎)로 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애정하는 모습은...어쨌든 무관심한 보통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한켠으로 조용한 지지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말인즉슨, 뭐 대단할 것은 없지만 나라는 보통사람도 기회가 된다면 지아장커라는 사람의 다음 영화를 한번 볼 마음이 들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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